리더는 팀원으로 하여금 성공을 불러오는 습관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큰 차이가 없을지라도 습관과 행동은 복리 계산처럼 시간과 노력을 지속하면 차이가 증폭된다.
이렇게 성공의 길을 찾는 이들에게 그 자신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 보이는 사람, 그가 바로 리더다.
성공 확신을 일으키는 솔선수범의 힘
박소명 대리는 언제부터인가 혼자서 출장과 상담을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2016년 입사해 3년이 조금 지난 지금, 아직은 중대한 해외 업무를 도맡아 수행하기란 어려울 법도 하지만 작년 여름에 대만 출장을 다녀온 이후로 부쩍 자신감이 붙었다. 사실 그전에는 혼자 해외 출장을 다녀온다는 것은 언감생심, 뜻밖의 일이었다. 중국의 서안 법인을 다녀오는 것이라면 가능한 일이었지만, 제품 상담을 처음 요청한 업체를 단독으로 방문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이 일을 어쩌지?’ 고민과 망설임으로 가득한 그의 표정을 읽었는지, 장빈 부장이 그를 불러 가만히 말했다.
“내가 몇 가지 일러둘 테니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
장 부장은 혼자서 상담 미팅을 다녀오는 일에 지장 없도록, 안건 준비뿐만 아니라 도시 간 이동과 숙박까지 알아서 조율하고 준비할 수 있게 꼼꼼히 살펴봐 줬다. 박 대리는 장 부장의 세심한 도움 덕분에 만반의 출장 준비를 마치고 편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게 됐다. 출장기간 중에는 태풍으로 인해 비행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일정이 연착되는 등 혼란이 있었지만, 장 부장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격려와 응원에 힘입은 결과 무사히 업무를 마칠 수 있었다. “기존 거래처가 아닌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회사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어요. 제 경험치를 쌓는 유무형의 성과도 얻었답니다.”
팀원들은 장빈 부장을 ‘성취에 대한 자극을 주는 훌륭한 모델’이자 ‘합리적이고 솔선수범하는 리더’라 말한다. “자기 입장에서 지시만 하는 보스가 아니라, 먼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팀원들이 함께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주는 좋은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팀원들 각자의 수준이나 성향에 맞게 일을 제시해주고 본인이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도전정신을 일깨워줍니다. 그런 자극을 받으며 조직도 일취월장할 수 있었죠.”
6년 전 장 부장이 오창 본사로 출근하던 날 해외영업 담당자는 단 1명뿐. 그러나 지금은 6명으로 늘었다. 사세가 커진 만큼 원익머트리얼즈 해외영업팀도 커진 것. 팀원들이 함박웃음을 짓는 일이 많아진 이유다.
동기 부여를 통해 한뼘 더 성장하는 팀원들
해외영업팀들이 글로벌 반도체 전시회 ‘세미콘 차이나’, ‘세미콘 타이완’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여러 참관객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장 부장은 부스를 찾은 사람들을 일일이 맞으며 팀원들을 소개했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인사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한 법이지.” 그 덕에 자연스레 동기부여가 된 팀원들은 현지 바이어를 만나 대화하고, 글로벌 마인드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박소명 대리는 이때를 돌아보면서 “부장님은 팀원들이 스스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게, 미래를 위한 각자의 길을 잘 닦을 수 있게 방법을 제시해주시고 도와주시는 분이란 걸 또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구성원들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지시하고 감독하는 유형의 상사가 있고, 각자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믿고 맡기는 상사가 있다. 전자의 경우 당장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구성원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과도한 개입이 있을 수 있다. 반면 후자의 경우 처음에는 부족하더라도 조직의 협력과 응원, 인내의 힘으로 차츰 결과를 만들어낸다. “팀원들에게 자유로운 분위기를 불어넣어 주면서 자신의 일을 스스로 찾아 하게끔 만들어 주는 분, 항상 비전을 갖고 최선을 다하도록 이끌어주는 분이 바로 장빈 부장님입니다.” 팀원들의 아낌없는 칭찬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 존재하지만 군림하지 않는 사람이 오늘의 리더 장빈 부장이다.
원익머트리얼즈 해외영업팀의 장빈 부장입니다. 벌써 8년 차가 됐네요. 지금은 해외영업팀이 판교 사옥에서 근무하지만, 제가 입사한 2013년 6월에는 전 직원들이 오창・전의에 있었어요, 당시 전 직원이 100여 명으로 기억하는데 현재는 네 배가 됐죠, 격세지감이 느껴지죠?
제 첫 사회생활은 1998년 12월에 시작됐어요. 해외사업 부서에서 근무했는데, 당시만 해도 이메일이나 전자결재가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이라 팩스나 전화로 해외 바이어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던 기억이 납니다. 신입사원이 하는 일 중에는 매일 퇴근 무렵 그날 수신・발신된 팩스를 정리하고 결재판에 도장을 찍어 다음날 아침 상사에게 제출하는 게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아무리 외국어에 능숙하더라도 비즈니스 용어, 업계 전문 용어 등 익숙하지 않은 것이 많아 사수들에게 혼도 많이 났죠. 특히 제 팀장님은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부르시고는 철자 하나하나, 영문법까지 바로잡아주시는데 거의 <성문종합영어> 강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괴롭고 짜증이 나고, ‘왜 이런 것까지 일일이 따지시는 건가?’하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사실 반항도 할까 싶었지만, 감히 그러진 못했어요.
특이한 것은 팀장님 왈, “장빈 씨는 중국어 스펙이니, 중국지역 말고 기타 지역을 맡아 일을 해보세요”라고 권유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제게는 “왜? 왜? 왜? 왜? 왜? 왜? 왜?” 모르면 이해할 때까지 질문해라, 모든 현상엔 이유가 있으니 ‘왜’라는 질문을 적어도 7번은 나 자신에게 던지라고 말씀하셨죠.
그렇게 2년 정도 지났을까요? 중국의 경제 영향력이 커지면서 여러 지역에서도 중국어 스펙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졌고, 저는 해외사업에 수반되는 각종 해외 프레젠테이션, 전시회 대표 연설, 회사 내 주요 고객사 담당 등 중요한 업무들을 맡을 수 있게 됐어요. 그 후 제가 꿈꾸던 소위 007가방을 들고 비행기로 해외를 왔다갔다하는 인터네셔널 세일즈맨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항상 당시 저를 이끌어준 팀장님께 감사하며, 지금도 연락하고 지냅니다.
요즘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황금기를 벗어나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지금을 기회로 삼아 전 해외영업팀원들과 함께 우리 회사를 글로벌 컴퍼니로 도약시킬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특히 중국 서안 공장은 당사 중국 비즈니스의 교두보 역할과 향후 중국 반도체 시장 확대에 대비할 수 있는 전초기지입니다. 꼭 성공시켜 보겠습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제품력과 품질을 인정받을 수 있는 회사임을 입증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