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아이피에스 유진혁 과장
가족의 무대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하모니
해가 짧아져 다섯 시만 되어도 밖이 어두컴컴하다. 하지만 원익아이피에스 유진혁 과장의 눈은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났다. 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던 그는 말쑥하게 차려입고 가족과 함께 어느 재즈바로 향했다.
유진혁 과장을 쏙 빼닮은 다섯 살배기 아들 유태오 군은 아빠와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이 어색했다. 아빠는 늘 자신이 잠들었을 때에야 집에 돌아왔고 잠에서 깨기 전에 출근했기 때문. 아빠는 자신과 함께 잠드는 존재라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주말이나 주중 저녁에 함께 놀아주더라도 아들은 꼭 잘 시간만 되면 “아빠는 이제 가서 자”라는 말을 했다. 이는 비단 유 과장의 가정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유 과장은 “가족모임 등에 나가면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해요. ‘아빠는 이제 아빠 집에 가’라든지 ‘아빠는 회사에 살잖아’라는 말을 듣곤 했다더라고요.”하며 씁쓸함을 내비쳤다. 하지만 주 52시간제가 시행되고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부쩍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태오 군 역시 더 이상 아빠와 잠드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게 됐다. 한참 손을 많이 타는 시기에 함께 있어줄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유진혁 과장. 그의 부인 강선아 씨도 “매번 저녁 차리는 게 일이었어요.
아들 밥 먹이고 나면 제 밥 그리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 밥. 저녁마다 세 번씩 상을 차려야 하는데 보통 일이 아니죠. 하지만 이제는 아이도 컸고 남편도 일찍 돌아오니 셋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식사시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요.”하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나날들. 이제는 그 간절한 마음을 모아 더 사랑하고 돈독해질 수 있게 됐다.
유 과장이 오늘 평일임에도 편안히 달려온 곳은 아내의 공연장이다. 그의 아내 강선아 씨는 재즈 보컬리스트로 결혼 전 그리고 결혼 후에도 재즈 페스티벌이나 각종 공연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태오 군을 낳게 되면서 잠시 휴식기를 가져야만 했는데, 태오 군이 다섯 살이 된 지금에서야 복귀에 시동을 걸 수 있게 됐다. 재즈 공연은 주로 밤에 이뤄지기도 하거니와 지방공연도 잦은 탓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쉽사리 복귀하기 힘든 상황. 그간은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왔지만 언제까지 손을 빌려야 할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며 유 과장과 육아 바통터치를 할 수 있게 됐다. “정말 다행이죠. 늘 장모님께 감사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 마음을 한결 덜 수 있게 된 거잖아요. 그리고 아내의 커리어가 단절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행복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가족 모두가 선아 씨의 성공적 복귀를 축하하는 날. 사보팀도 축하의 마음을 담아드리기 위해 아내분에게 드릴 꽃다발과 태오군에게 줄 장난감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아내의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유 과장은 설렘과 자랑스러움이 가득해 보였다.
유 과장, 선아 씨, 태오 군 그리고 장모님은 먼저 축하의 의미로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했다. 크로켓, 스파게티, 리조또 등 맛있는 음식과 함께 도란도란 추억 이야기가 피어올랐다. “당신, 연애할 때는 내 공연 출석률이 거의 90%였잖아. 지방까지 와서 봐 주고. 이렇게 있으니까 꼭 그때 생각이 나네.”
유 과장은 짐짓 부끄러운 듯 “태오야, 오늘 엄마 진짜 멋지다 그치?”하며 화제를 돌린다. 웃음으로 가득한 식사 중, 선아 씨는 슬슬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PM 7시. 피아노와 드럼, 베이스와 탭댄스에 맞춰 선아씨의 목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이끌리듯 들어온 손님들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지인들로 자리가 채워지고 공연은 점점 뜨거워진다. 태오 군은 반짝이는 눈으로 탭댄스를 따라 하다 이내 머쓱하며 재롱을 부린다. 그런 태오 군을 바라보는 유 과장의 얼굴엔 미소가 그득하다. 아내의 공연을 아들과 장모님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 그에게는 어떤 영화보다 감동적인 장면이다.
30분간의 공연이 끝나고 유 과장은 박수와 함께 무대에서 내려오는 아내에게 준비한 꽃다발을 건넨다. “수고했어. 앞으로도 같이 멋지게 살아가자.” 선아 씨는 놀란 듯했지만 이내 감동과 기쁨이 뒤섞인 얼굴로 꽃다발을 품에 안았다. 태오 군 역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손뼉을 치며 함께 축하했다. 연신 딸 선아 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장모님도 이 아름다운 장면을 눈으로 꼭꼭 담으셨다.
밤이 깊어지고 가족들은 슬슬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태오 군은 졸린 듯 연신 눈을 비비다, 사보팀에서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하자 언제 잠이 왔었냐는 듯 활짝 웃으며 “얼른 집에 가서 풀어보자!”고 아빠를 재촉했다.
서로의 얼굴을 깊이 또 깊이 마주하고 작은 이야기를 나누며 큰 꿈을 응원하는 사람들, 가족. 주 52시간 근무제가 이들에게 준 것은 그저 소소한 몇 시간일 뿐일지라도 아들의 웃음, 아내의 꿈, 장모님의 휴식 그리고 유 과장의 행복은 그 시간 안에서 하모니가 되어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